[ Fluctuat Nec Mergitur ] 플룩투아투 넥 메르기투르 : 파도에 흔들리되 가라앉지 않는다
파도가 없는 바다를 상상할 수 없듯이 문제가 없는 삶도 있을 수 없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정작 사나운 파도를 만나면 우리는 절망한다. 그래서 이 문구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가라앉지 않는 한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파리시의 문장이기도 한 이 문구를, 오늘은 다시 생각해본다.
새기기 전에 확인하세요 ⑦ — 타투로 사랑받는 라틴어
파도에도 가라앉지 않는 이유
세 단어 안의 배 한 척
Fluctuat nec mergitur는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fluctuat는 '물결치다, 흔들리다'라는 동사 fluctuo의 3인칭 단수형이고, nec는 '그리고 ~하지 않는다'는 부정 접속사이며, mergitur는 '가라앉히다, 잠기게 하다'라는 동사 mergo의 수동태 3인칭 단수형입니다. 그대로 옮기면 "그것은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가 됩니다. 여기서 주어인 '그것'은 원래 배(navis)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파리보다 오래된 문장
이 문구를 파리가 처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된 형태는 13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 또는 인노첸시오 4세의 것으로 전해지는 두 줄짜리 시구가 그 뿌리인데, 여기서 '배'가 가리키는 것은 파리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 이른바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이 시구는 15세기 필사본 전통을 거쳐 1567년 신학자 마티아스 플라키우스의 책에도 인용됩니다.
한편 파리 자체의 배 문장(紋章)은 별개의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센 강 무역을 독점하던 수상 상인 조합의 1210년경 인장에 이미 배 한 척이 등장하고, 1358년에는 파리시의 공식 문장으로 처음 기록됩니다. 두 전통, 즉 교회의 시구와 파리의 배 그림이 하나로 합쳐져 문구로 등장한 것은 1580년대 파리에서 발행된 주화(jeton)에서였고, 이 문구가 파리의 공식 모토로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인 1853년, 오스만 남작에 의해서였습니다.
문구가 거쳐온 두 개의 인용
"Niteris incassum navem submergere Petri, / Fluctuat at numquam mergitur illa ratis."
"너는 헛되이 베드로의 배를 가라앉히려 하는구나. 이 배는 흔들리지만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 — 13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9세 혹은 인노첸시오 4세의 것으로 전해짐
여기서 배는 곧 교회였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가라앉힐 수 없는 대상이라는 선언이었던 셈입니다.
"Fluctuat, at nunquam mergitur illa navis."
"그 배는 흔들리지만,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 — Matthias Flacius, 《Clavis Scripturae Sacrae》, 1567
16세기 신학자 플라키우스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언제나 위태로워 보이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작은 배'에 비유했습니다. 파리의 상징이 되기 훨씬 전부터, 이 문장은 이미 자기만의 생애를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새기기 전에 확인하세요
공식 표기는 fluctuat nec mergitur이며, 주어는 3인칭 단수입니다. 배 혹은 도시를 '그녀(she)'로 지칭하는 문장이기 때문에, 이 문구를 그대로 몸에 새기더라도 문법적으로는 '나'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온전히 1인칭으로 새기고 싶다면 fluctuo nec mergor("나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처럼 동사 형태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또 하나, 이 문구는 2015년 파리 테러 이후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교회의 상징 문구가 축약되어 파리의 문장에 흡수된 결과이며, 파리의 공식 모토가 된 것도 1853년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800년 가까이 이 문장은 주인을 바꿔가며 살아남았습니다. 처음엔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 앞에서, 그다음엔 파리를 위협하는 재난과 테러 앞에서, 이 문구는 매번 다른 이름으로 소환되었습니다. 흔들림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침몰을 거부하는 이 오래된 문장이 지금까지 반복해서 선택되는 이유는, 아마도 파도 자체를 없앨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logbook-latina의 사색
가라앉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을 나는 오랫동안 최소한의 기준이라 생각했지만 버티는 것, 무너지지 않는 것,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 문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가라앉지 않는 한, 삶은 어쨌든 앞으로 간다고 말한다. 버티는 일과 나아가는 일이 사실 같은 동작이었다는 걸, 시간이 많이 흐르고나니 보인다.
오늘도 파도는 친다. 여전히 흔들린다. 그렇게 삶은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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