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bi sunt ] 우비 순트 :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가끔 지난 일들이 떠오를 때면, 그 때는 그렇게 생생하게 있었던 기쁨과 슬픔은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생각한다. 그 순간을 가득 채웠던 감정들은 분명 존재했는데,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것들은 사라진 걸까, 아니면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걸까.
사라진 것들에 대한 물음
어원 분석
"Ubi sunt"는 의문부사 ubi(어디에)와 esse 동사의 3인칭 복수 현재형 sunt가 결합한 구문으로, 직역하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뜻입니다. 완전한 형태는 흔히 "Ubi sunt qui ante nos fuerunt?"로 쓰이며, "우리보다 앞서 있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fuerunt는 esse 동사의 완료형으로, '존재했었다'는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나타냅니다. 완료형 fuerunt와 현재형 sunt가 한 문장 안에서 만나며, '분명히 있었음'과 '지금은 없음'이라는 시제의 긴장이 이 짧은 구문 안에 그대로 담깁니다.
기원
"Ubi sunt"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구약성서 외경 바룩서(Baruch) 3장 16-19절의 불가타 라틴어 번역본입니다. "Ubi sunt principes gentium...(민족들의 통치자들은 어디에 있는가)"으로 시작하는 이 구절은,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권력자들도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이후 이 구문은 중세 문학 전반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 이른바 '우비 순트 모티프(ubi sunt motif)'로 발전했습니다. 젊음과 아름다움, 권력의 덧없음을 명상하는 형식으로,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부터 프랑수아 비용의 발라드, 대학생들의 애창곡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특정 저자 한 사람의 창작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세대를 거쳐 계속 되물어진 셈입니다.
인용구로 보는 Ubi sunt
"Ubi nunc fidelis ossa Fabricii manent, Quid Brutus aut rigidus Cato?"
—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 2권 운문 7 (Boethius, De Consolatione Philosophiae, II, metrum 7)
번역: "이제 충직했던 파브리키우스의 뼈는 어디에 남아 있는가, 브루투스나 엄격한 카토는 어디에 있는가?"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로마사에서 가장 존경받던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냅니다. 청렴한 정치가 파브리키우스, 강직한 원칙주의자 카토는 후대에 이름을 남겼지만, 보에티우스는 그 명성조차 결국 '얇은 글자 몇 개(pauculis litteris)'로 남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명성이라는 것도 결국 형체 없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적어 내려갑니다.
"Ubi sunt, qui ante nos in mundo fuere?"
—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 (De Brevitate Vitae, 13세기 골리아드 가요)
번역: "우리보다 앞서 이 세상에 있었던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유럽 여러 대학의 졸업식과 입학식에서 불립니다. 젊음을 예찬하는 흥겨운 후렴 사이에 이 구절이 갑작스레 끼어들어 삶의 유한함을 상기시킵니다. 축제의 노래 한가운데 죽음의 질문을 끼워 넣은 이 구성은, 즐거움과 덧없음이 실은 같은 순간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현대인에게 남기는 것
"Ubi sunt"는 답을 주지 않는 질문입니다. 성서의 저자도, 보에티우스도, 이름 모를 중세 시인들도 사라진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계속해서 되묻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진과 기록, 클라우드 저장공간에 지나간 순간들을 붙잡아 두려 하지만, 그 순간을 채웠던 감정 자체는 어떤 기술로도 저장되지 않습니다. 우비 순트의 전통이 수백 년간 반복되어 온 이유는, 사라짐을 막을 방법을 찾아서가 아니라 사라짐을 그대로 마주하는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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