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ines quod volunt credunt ] 호미네스 쿠오드 볼룬트 크레둔트 :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믿는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결론을 향해 온갖 근거를 끌어모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하고 싶은 선택을 해놓고는, 그 선택이 옳다는 증거들만 골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천 년 전 로마의 한 장군도 이미 이 인간의 오래된 습성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오늘은 인간이 얼마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존재인지를 담담히 짚어낸 문장, '호미네스 쿠오드 볼룬트 크레둔트(Homines quod volunt credunt)'의 의미를 깊이 사유해보고자 한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마음, 인간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습성
세 단어 안에 담긴 인간 심리의 구조
오늘의 라틴어 '호미네스 쿠오드 볼룬트 크레둔트(Homines quod volunt credunt)'는 세 단어가 결합된 문장입니다. 먼저 호모(Homo)의 복수 주격형인 호미네스(Homines)는 '사람들', '인간들'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관계대명사 쿠오드(Quod)는 '~하는 것을'이라는 뜻으로, 뒤에 오는 동사 볼룬트(Volunt)와 결합해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명사절을 이룹니다. 볼룬트는 '원하다, 바라다'를 뜻하는 동사 벨레(Velle)의 3인칭 복수 현재형입니다. 마지막으로 크레둔트(Credunt)는 '믿다'를 뜻하는 동사 크레데레(Credere)의 3인칭 복수 현재형입니다. 이 세 요소를 이으면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믿는다'는 문장이 완성됩니다.
이 표현은 원래 더 긴 문장에서 축약되어 오늘날 널리 인용되는 형태입니다. 원문은 '페레 리벤테르 호미네스 이드 쿠오드 볼룬트 크레둔트(Fere libenter homines id quod volunt credunt)'로, '대체로(Fere)' '기꺼이(Libenter)'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Id)' 원하는 대로 믿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문장이 조금 더 간결한 '호미네스 쿠오드 볼룬트 크레둔트'의 형태로 축약되어 자주 인용됩니다.
거짓 탈영병 한 명이 무너뜨린 갈리아군의 판단력
이 문장은 카이사르가 기원전 1세기에 남긴 전쟁 기록 『갈리아 전기(De Bello Gallico)』 3권 18장에 등장합니다. 당시 로마 부장 퀸투스 티투리우스 사비누스는 갈리아 서북부 베넬리족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지휘관 비리도빅스는 매일 병력을 이끌고 나와 싸움을 걸었지만 사비누스는 진지에서 나오지 않고 버텼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군은 겁쟁이라는 조롱까지 받았습니다.
사비누스는 이 상황을 역이용했습니다. 그는 거짓 탈영병을 적진에 보내, 카이사르가 베네티족과의 전투에서 곤경에 처해 있으며 사비누스 역시 다음 날 밤 몰래 병력을 빼내 그를 도우러 갈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습니다. 갈리아군은 이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Fere libenter homines id quod volunt credunt."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믿는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3권 18장)
카이사르는 이 문장을 갈리아군이 패배한 이유를 분석하며 담담히 기록했습니다. 훈육이나 경고의 의도가 아니라, 전장에서 실제로 목격한 인간 심리에 대한 냉철한 관찰이었습니다. 결국 갈리아군은 로마 진지가 비어있다고 믿고 공격을 감행했다가, 매복해 있던 사비누스의 군대에게 크게 패했습니다.
"Nothing is easier than self-deceit. For what each man wishes, that he also believes to be true."
(자기기만보다 쉬운 것은 없다. 각자가 원하는 것, 그것을 또한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데모스테네스, 『제3차 올린토스 연설』, 기원전 349년)
카이사르보다 약 3백 년 앞서, 아테네의 정치가 데모스테네스는 마케도니아의 위협에 안일하게 대응하려는 시민들을 향해 이 말을 던졌습니다. 전쟁을 원치 않는 마음이 전쟁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그는 정치 연단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시대와 언어를 달리한 로마의 장군과 그리스의 웅변가가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인간의 습성을 포착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알고리즘 시대에도 계속되는 오래된 습성
오늘날에도 이 습성은 형태를 바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이미 동의하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뉴스와 통계만을 손쉽게 찾아 소비합니다. 투자 결정이나 인간관계, 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결론을 먼저 정해두고 그에 맞는 근거를 나중에 짜맞추는 일은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카이사르가 기록한 갈리아군처럼, 원하는 정보만 받아들인 결과가 항상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이 문장이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 시대나 민족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공통적으로 지닌 습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logbook-latina의 사색
오래전에 내렸던 결정 하나를 떠올려 본다. 그때 나는 분명 여러 정보를 검토했다고 믿었지만, 돌이켜보니 사실은 내가 원하는 답을 이미 정해두고 그걸 뒷받침할 근거들만 골라 담았던 것이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는 슬쩍 눈을 돌렸고, 듣고 싶은 말에는 유독 크게 귀를 기울였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 자부하지만, 실은 감정이 먼저 결론을 내려놓고 이성은 그 뒤를 쫓아가며 변명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사실을 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고 싶은 것과 실제로 옳은 것 사이에 틈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의식하는 순간, 적어도 스스로를 완전히 속이지는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 틈을 알아차리는 습관이, 어쩌면 지혜로 가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