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s Gratia Artis ] 아르스 그라티아 아르티스 : 예술을 위한 예술
아무런 실용적 쓸모도 증명하지 못한 채, 그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세상 모든 것의 값을 매기려 드는 시대에, 오로지 그 자체로 완결된 아름다움만을 좇는 창작의 몸짓은 종종 무모하거나 사치스러운 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화폭 위의 붓질 하나, 필름 위에 새겨진 빛과 그림자 하나에도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씩 잊고 지낸다.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창작의 순수한 근원, 예술이 오직 예술이기 위해 태어나는 그 시원(始原)의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오늘은 세계 곳곳의 스크린 앞에서 필름의 시작을 알려온 다짐, '아르스 그라티아 아르티스(Ars Gratia Artis)'가 건네는 미학을 사유해보고자 한다.
MGM 로고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 ③ — 영화와 책 속 라틴어
Ars Gratia Artis, 예술을 위한 예술
오래된 영화 한 편의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난 뒤, 화면 위로 다시 한번 사자가 포효하는 방패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방패를 휘감고 있는 세 개의 라틴어 단어, 'Ars Gratia Artis'를 이번에는 눈여겨 읽어보았습니다. 뜻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 세 단어가 어떻게 조합되어 있는지, 왜 하필 이 순서로 새겨졌는지는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 짧은 문구를 하나하나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라틴어, 한 단어씩 뜯어보면
Ars Gratia Artis는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Ars'는 '기술, 기예, 예술'을 뜻하는 명사의 주격 단수형입니다. 'Artis'는 같은 단어 ars의 속격(genitive) 단수형으로 '예술의'라는 뜻을 지닙니다. 가운데 놓인 'Gratia'는 원래 '은혜, 호의, 감사'를 뜻하는 명사이지만, 속격 명사와 함께 쓰이면 '~을 위하여, ~때문에'라는 전치사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문구 전체는 '예술지상주의(Ars Gratia Artis)', 즉 예술이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선언으로 풀이됩니다.
그런데 gratia라는 단어의 쓰임을 조금 더 파고들면 흥미로운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라틴어에서 gratia는 관용적으로 속격 명사 뒤에 놓이는 후치사처럼 쓰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약어 'e.g.'의 원형인 'exempli gratia(예시를 위하여)'나 'verbi gratia(말하자면)'를 떠올려보면, gratia가 늘 속격 명사 다음 자리에 놓인다는 규칙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규칙대로라면 '예술을 위한 예술'은 'Ars Artis Gratia'로 적는 편이 문법적으로 더 정연한 표현입니다. MGM 로고에 새겨진 'Ars Gratia Artis'는 이 순서를 뒤집어, gratia를 두 ars 사이에 끼워 넣은 독특한 배열인 셈입니다.
사자 로고 뒤에 숨은 사연
이 특이한 배열이 태어난 사연을 찾아보면, 다시 한 세기 가까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16년, 컬럼비아 대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남짓의 젊은 홍보 담당자 하워드 디츠(Howard Dietz)는 당시 신생 영화사였던 골드윈 픽처스(Goldwyn Pictures)의 로고를 디자인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교의 응원가 '으르렁대라, 사자여(Roar, Lion, Roar)'에서 영감을 얻어 사자를 로고의 주인공으로 골랐고, 그 사자를 감싸는 문구로는 은사였던 언어학 교수에게 들었던 라틴어 경구를 가져다 썼다고 전해집니다. 1924년 메트로 픽처스, 골드윈 픽처스, 루이스 B. 메이어 픽처스가 합병하여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가 출범한 뒤에도 이 사자와 문구는 그대로 새 회사의 얼굴이 되어 지금까지 백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디츠가 이 문구를 고른 데는 시대적 배경도 한몫했습니다. 20세기 초 할리우드에서 영화는 아직 '싸구려 구경거리'라는 인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신생 스튜디오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만드는 영상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회화나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예술임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문구는 바로 그 시대적 열망, 즉 필름 위의 이미지도 순수예술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는 선언을 담고 있었던 셈입니다.
예술을 변호한 두 목소리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사상 자체는 디츠가 처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19세기 프랑스에서 뜨겁게 토론되던 미학 논쟁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시인이자 소설가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는 1835년 자신의 소설 『모팽 양(Mademoiselle de Maupin)』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 Théophile Gautier, 『Mademoiselle de Maupin』 서문, 1835
당대의 비평가들이 예술은 사회에 유익한 교훈이나 도덕을 전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절, 고티에는 정반대로 예술의 가치가 오히려 '쓸모없음'에서 나온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역시 1850년에 발표한 에세이 「시적 원리(The Poetic Principle)」에서 비슷한 결의 문장을 남겼습니다.
— Edgar Allan Poe, 「The Poetic Principle」, 1850
포는 시가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이단'이라 불렀고, 시의 존엄은 오직 시 그 자체에 있다고 못 박았습니다. 고티에와 포 모두 예술에 '쓸모'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오히려 예술의 본질이 훼손된다고 본 셈입니다. 하워드 디츠가 스튜디오 로고에 새긴 세 단어는, 바로 이 두 사람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각자 벌였던 논쟁의 결론을 압축해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겨진 순서에 숨은 반전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두면 좋은 사실이 있습니다. 흔히 'Ars Gratia Artis'를 고전 라틴어의 정석적인 표현이라 여기기 쉽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문법적으로는 'Ars Artis Gratia'가 더 정연한 어순입니다. MGM이 굳이 어순을 뒤집은 것은 문법적 오류라기보다는, 로고 도안에서 'Ars'와 'Artis'가 방패 양 끝에서 서로를 마주 보게 배치하려는 시각적 대칭을 고려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이 문구를 어딘가에 인용하거나 옮겨 적을 때는, 이것이 고전 문법이 아니라 MGM 로고 특유의 상징적 배열이라는 사실을 알고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결과와 효율을 증명해야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에, 백 년 전 한 스튜디오의 로고에 새겨진 이 세 단어는 여전히 낯설고도 반가운 질문을 건넵니다. 무언가를 하는 이유를 매번 설명할 수 있어야만 그 일을 계속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듯 느끼는 요즘,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선언은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할 자격이 있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줍니다.
logbook-latina의 사색
그런데 묘하게도, 그 문턱마다 새겨져 있던 짧은 다짐은 '삶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삶에 쓸모가 되어야 한다는 목적도, 무엇을 가르치거나 설득해야 한다는 소임도 내려놓은 채, 그저 아름다움 자체로 완결되고자 했던 순수한 다짐, 바로 '예술지상주의(Ars Gratia Artis)'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목적을 내려놓은 그 순수한 몸짓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나의 상상을 가장 멀리, 가장 깊이 데려가 준 힘이었다는 것을. 예술이 삶에 스며드는 방식은 쓸모를 증명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쓸모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오래된 극장의 어둠 속에서 내가 진정 사로잡혔던 것은 어떤 교훈이나 쓸모가 아니라, 그저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움을 지어낸 이들의 순정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 화면들이 결국 내 삶 가장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와 자리 잡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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